• 2022. 8. 3.

    by. 지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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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투자한다

     

    예술가들은 보통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예술품을 소비하는 그림시장 대다수의 컬렉터는 보수 중에서도 극보수의 성향을 띤다. 특히 투자를 주목적으로 한 컬렉터들은 나이, 컬렉션 기간, 성별을 불문하고 시장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특징이 있다.

    보수적인 컬렉터들의 가장 보편적인 투자 기준은 전문가들의 미학적 가치평가와 작가의 과거 작품 거래 기록이다. 그들은 새로운 작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사려고 하지 않고, 다른 컬렉터들이 주로 수집하는 작가의 작품을 사려고 한다. 작품을 수집할 때 드러나는 컬렉터의 개성이라 하면, 고미술품을 선호하냐 현대 미술품을 선호하냐 하는 정도다. 물론 19세기 말 유럽 인상주의나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 같은 특정 미술사조에 속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고, 누드나 동물 등 특정 소재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작가의 아이디어가 잘 드러나는 드로잉이나 판화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주목하는 작가 명단에는 이변이 거의 없다. 특히 투자를 목적으로 한 컬렉터들은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기반을 둔 독자적 컬렉션을 해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림 수집에서 무엇보다 안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향후 작품을 되팔아 수익을 거둬야 하기 때문에 나만 좋아하는 작품이 아닌 타인들도 좋아할 수 있는 그림, 타인이 사줄 수 있는 그림을 컬렉션할 수밖에 없다. 그림시장에 트렌드가 있긴 하지만 그 흐름이 다른 분야보다 느리게 전개되는 것도, 한 번 미학적·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은 작가가 계속 그림시장을 이끄는 것도 컬렉터들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이다.

    작가를 선정하는 측면 외에 보수적인 컬렉터들에 의해 형성된 컬렉션 경향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대부분 보기에 좋은 것, 보관하기 쉬운 것, 이동하기 편한 것, 설치하기 쉬운 것을 찾는다.

    ·세로보다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의 그림을 선호한다.

    ·되팔 때를 고려하여 이미 너무 고가인 그림은 구입하지 않는다.

    ·그림을 구매할 때 본인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딜러나 전문가들에게 꼭 확인을 거친 후 작품을 구입한다.

    ·난해하고 우울한 그림보다는 단순하고 편안하고 외관상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찾는다.

    ·작가의 극적인 생애가 반영된,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선호한다.

    ·작가의 대표작을 찾는다.

    ·작가의 노동력이 많이 드러나는 수공예적 작품에 더 매력을 느낀다.

    ·가장 선호하는 장르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려진 그림이다. 그 다음이 조각, 사진 순이다. 

    ·설치가 힘들거나 소모품으로 제작된 미디어 작품의 컬렉션을 어렵게 생각한다.

    ·그림 중에서도 수채화보다는 유화, 가볍게 칠해진 유화보다 두껍게 칠해 붓 터치가 살아 있는 유화를 더 선호한다.

     

     

     

    최고의 작품을 만났을 때 망설이지 않는다

     

    서도호는 전 세계적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는 주요한 현대 작가다. 한국에서는 미술관 전시 외에 상업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는 그의 작품을 거래하는 1차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미국 뉴욕에 있는 리만머핀갤러리를 통해서만 작품을 거래하고 있다. 작품이 재거래되는 2차 시장에서도 매물로 나오는 서도호의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2년 전의 일이다. P 씨가 서도호 작품을 섭외해달라고 요청해왔다. 동료 딜러와 손님들에게 거래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지 물어봤으나 매물이 없었다.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나서 서도호의 <표본> 시리즈 작품 2점을 제안할 수 있다며 런던에서 일하는 동료 딜러에게 연락이 왔다. 그가 제안한 작품은 2012년 리움 미술관 개인전 때도 선보였던 작품으로 미술관 전시 경력이 있는 작품 자체 이력이 훌륭하고 정교함까지 돋보이는 수작들이었다. 시장에 형성되어 있는 서도호 작품가와 비교했을 때 가격도 나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 작품들은 누가 봐도 서도호의 수작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P 씨에게 서도호의 A급 작품을 찾았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본 그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런던의 동료에게 손님이 결정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 홀딩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2년 뒤 P 씨로부터 다시 서도호 작품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아직 서도호의 작품을 컬렉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판매 가능한 서도호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여러 곳에서 서도호 작품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2년 전에 봤던 작품만큼 완성도나 가격 면에서 좋은 작품이 없었다. P 씨 역시 2년 전에 봤던 작품이 더 좋았다며, 그때 그 작품을 다시 찾아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작품을 다시 찾아줄 수 없었다. 원하는 작품이 항상 시장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돈이 없어 작품을 못 사는 것이지 시장에 작품이 없어 그림을 못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이 항상 시장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최신작이나 구작이나 할 것 없이 작가나 소장자가 작품을 판매하겠다고 결정해야 작품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 원하는 작가의 작품이 시장에 언제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또 나오더라도 비공개로 거래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에 나에게 구입할 기회가 돌아올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공개 거래일지라도 시장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경쟁자들이 많아지면 그 작가의 수작을 선점하기는 더욱 어렵다. 

    작품이 시장에 나와 있다 하더라도 작가의 의도, 작가의 컨디션, 제작 시기, 작가가 작업할 때의 주변 상황에 따라 한 작가에게 창조되는 결과물이 모두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 작가의 필력이 덜 살아 있는 미완성인 듯한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그림을 컬렉션하려면 작가의 A급 작품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림시장의 특성상 같은 작가에게서 나오는 작품을 모두 비교해보고 살 수는 없다. 이쯤 되면 컬렉터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컬렉터를 선택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림시장에서 구매의 최적기는 언제일까? 그림시장의 고수들은 자신이 작품 구매 타이밍을 계획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켈렉션을 서두르지 않는다. 시장을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작가의 A급 작품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미술시장에는 절대적인 갑도 절대적인 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경쟁자들이 많아지면, 그 작가의 수작은 누가 선점하게 될까? 아마도 능력 있는 딜러와 더 깊은 신뢰 관계를 쌓은 사람이 될 것이다. 과열 양상을 보이는 시장에서 내가 원하는 작가의 작품을 구할 수 있는 사람과 가까운 관계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작품을 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과열된 시장이나 시장에서 핫한 작가의 작품을 구해줄 수 있는 누군가(갤러리, 작가, 소장자, 아트 딜러)와의 친분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을 살 때나 그림시장을 방문할 때는 항상 예의를 갖추고 정도를 걸어야 한다. 미술시장에서는 절대적인 갑도 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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